니콜라스 스테노
니콜라스 스테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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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68년에 그려진 니콜라스 스테노의 초상화 | |
출생 | 1638년 1월 11일 덴마크 코펜하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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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망 | 1686년 11월 25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슈베린 |
국적 | 덴마크 |
종교 | 로마 가톨릭교회 |
분야 | 해부학, 지질학 |
니콜라스 스테노(라틴어: Nicolaus Steno, 본명: 닐스 스텐센(덴마크어: Niels Stensen), 1638년 1월 11일 ~ 1686년 11월 25일)는 17세기 덴마크의 해부학자 겸 지질학자이다.
1659년 니콜라스 스테노는 책에 쓰여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하였다.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이론을 수립하였다.[1] 니콜라스 스테노는 이러한 업적으로 과학 혁명 시기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한 선구자 가운데 한명으로 여겨지고 있다. 특히 지층의 누적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여 층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.[2]
니콜라스 스테노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였으며, 198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.[3]
어린 시절
[편집]니콜라스 스테노는 율리우스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날에 태어났다. 아버지는 크리스티안 4세 밑에서 일하던 금세공사였으며 루터교 신자였다. 니콜라스는 어렸을 적 알려지지 않은 병에 걸려 가족들과 떨어져 자랐다. 164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는 다른 금세공사와 재혼하였다. 1654년에서 1655년 사이에 니콜라스가 다니던 학교에는 흑사병이 돌아 240명의 학생이 사망하였다. 그가 살던 집 건너편에는 당시 덴마크의 부호 페데르 그리펜펠트가 살았다. 1671년 그리펜펠트는 니콜라스 스테노에게 코펜하겐 대학교의 교수직을 제안하였다.
니콜라스 스테노는 대학을 마친 후 유럽 각지를 여행하였다. 스테노는 네델란드, 프랑스, 이탈리아, 독일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과학자들을 만났고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. 1660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해부학을 배웠고, 1665년에는 플랑드르에서 화석에 대해 공부하였다.[4] 이 때의 공부를 통해 스테노는 기존의 신학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이론 수립의 기반으로 삼게 되었다.
업적
[편집]니콜라스 스테노는 1669년 발간한 저서에서 해양성 침식물과 담수성 침식물을 구분하고 화석이 과거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의 흔점임을 밝혔다.[5]
니콜라스 스테노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지층이 유수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과 그에 따라 오래된 층 위로 새로운 층이 쌓여나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. 또한 니콜라스 스테노는 지층에 포함된 화석을 지층 형성 시기 판별의 중요한 자료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았다.[4]
종교관
[편집]니콜라스 스테노는 플랑드르에서 공부하면서 루터교 신앙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였다. 1677년에 주교로 임명되었다.[3]
각주
[편집]- ↑ Kooymans, L. (2007) Gevaarlijke kennis. Inzicht en angst in de dagen van Jan Swammerdam. Information from Steno's diary, called Chaos, written around 1659, and discovered in 1946 in a Florence library
- ↑ Woods, Thomas. How the Catholic Church Built Western Civilization, p 4 & 96. (Washington, DC: Regenery, 2005); ISBN 0-89526-038-7
- ↑ 가 나 Nicolaus Steno, NASA
- ↑ 가 나 Nicolas Steno Archived 2012년 1월 15일 - 웨이백 머신, eNotes
- ↑ 자연과학교재연구회, 인간과 자연과학, 학문사, 1995년, ISBN 89-467-4069-8, 92쪽
외부 링크
[편집]- 위키미디어 공용에 니콜라스 스테노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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